되돌아보면.

내가 남미에서도 유명하다는 마츄피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왜냐 물으면 그냥 난 "또 오려고 안갔어요."라고 할 뿐. 이제 기억을 더듬어볼까. 여행의 전환점은 페루 리마였다. "나는 할 일이 없고, 리마에는 볼 것이 없다."고 얘기한 H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리하여 볼거리를 찾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저어하는 나로서는 H와 하루는 바다에, 하루는 시내로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에 동조한 나는 펼쳐진 시간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그 시간 틈틈이 과거를 돌아보는데 할애했다. 그렇게 여행의 절반 어느 지점에 나는 마치 전후반전 사이 휴식 시간을 맞은 이처럼 잠시 숨돌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간 지속된 이 시간들은 남은 날들 동안 남미 어느곳으로 향해야 할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곳을 떠난 날이 11월 17일. 한달여 남은 시간동안 이제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로 향해야했다. 마츄피츄에 간다면......? 일주일간을 쿠스코와 마츄피츄에 할애해야할텐데 한달여 남은 시간 속에 그 일주일을 구겨넣는 것 같단 생각에 머리 속이 일그러졌고 그냥 툭 놓아버렸다. 그리곤 마츄피츄 정도 되는 걸 놓아버려야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을 구실로 그럴싸하겠단 합리화. 그리하여 마음이 편안해져 아르헨티나 땅끝까지 향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키토에서 뵌 N의 아버님께 우유니 투어가 끝난 날에 메일을 드렸다. 마츄피츄에 대해 설명드리기로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못지켰음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여정 중 하루 시간을 내주셨던 아버님께 고마움을 표하고자..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확인한 답신은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봤던 노스탈쟈들 중에서 현주씨만큼 대범하고,
그러나 왠지 모르게 허전해 보였던 이가 없었던 것 같아.
이름하여 허무혼의 자기찾기라고나 할까.

부끄러웠다. 공허를 덮기 위해 의도된 씩씩함이 쉬이 노출되었구나......1년 전 C는 내게 한동안 매개공간에서 봤을 때 "젠 뭐가 좋은 일이 있어서 늘 생글거리고 있을까, 이상한 애인갑다"라고 느꼈단 말을 전해줬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을 척 말고 내겐 정말 가벼움이 필요한 것이었다. 오래된 양념통 뚜껑을 열듯 힘을 들여야할 어느 지점이 시급하단 생각. 바로 그 지점을 넘기면 순조로와질거란 믿음.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떠돌던 발길은 발랄해졌다.

엘 칼라파테에서부터 열흘여 함께 보낸 쑥 언니는 너 노는 앤줄 알았다고 말했다. 살면서 거의 처음 들은 이 말이 반가웠던 것은 어느새 내 안의 공기가 훈훈해졌을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생각때문이었기도......



by ahwui | 2009/01/23 17:50 | 2009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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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뽀나 at 2009/01/29 18:13
노는애...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니가 빨리 보고싶어지는군
노는애 친구가 되겠구나 내가 ㅋㅋ
Commented by ahwui at 2009/01/29 20:29
이미 우린 친구였는데 다만 내가 이제 좀 논다는 거지 뭐. ㅋㅋ
몽실이는 건강하우?
Commented by 상냥한삶 at 2009/01/30 14:21
여선생님 안녕? 오랜만. 잘 지내고 있지? 근데 애기 이름이 몽실이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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